TYLER RA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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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

우리는 인간이라서 그런지, 다른 생물종이나 주변에 있는 공간들을 봤을 때 그저 우리에게 보이는 그대로라고, 그들의 존재가 우리에게 보이는 그대로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요. 

“절벽이나 바위가 보이면 돌이니까 딱딱하고 차갑고 변함이 없다. 바다에 고래 한 마리가 보이면 혼자고 외로울 것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맞는 걸까요? 우리에게 보이고 느껴지는 그대로인 게 맞을까요? 우리가 만나면 그쪽이 저한테 보이시는 그대로가 그쪽의 전부일까요?

드넓은 바다에 고래 한 마리가 보이고 혼자 있다고 해도 외롭지 않을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고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머나먼 거리에 걸쳐서 서로 말 걸고 소통할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고래란 바닷물에 몸 담고 있을 때면 혼자 있을 수도, 외로움 느낄 수도 없는 그런 동물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 돌이 있잖아요? 한결같고 튼튼하고 변함없는 암석, 무언가 생기가 없고 정태적이고 고정돼 있다고 딱딱한 고체로 보는 거죠. 하지만 그건 돌에게 자기만의 시공간의 개념,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흐르고 돌의 움직임이 다른 차원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없어서 그래요. 돌도 나름 역동적이고 깨지고 녹고 흘러요. 시간을 빨려 돌리다보면 고체가 아니라 액체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와의 어떤 존재적 시차가 있으니까, 그 시간의 경계를 넘어 볼 수 있게 되죠. 돌을 보고 있으면 사람이 경험하지 못했던 지구의 다른 세상과 과거들이 엿보이니까요.

뭐 미술, 예술이라면 창작이라 다 가능할 것 같은데 저에게 그림 그리는 것은 이렇게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나'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하는 노력을 통해서 우리는 개인보다 더 큰 존재, 자연, 우주와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그걸 느끼고 싶으니까요. 감각과 공감을 통해서 자연과 생태계, 우리보다 큰 것과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 물감을 몸으로 움직이고 그런 철학적인 고민을 실제로 한번 만져보는 거죠.


 

 ABSTRACTED CONIFER

침엽수는 왜 특별할까요? 구상나무, 소나무. 넓은 잎이 아닌 바늘잎, 두껍고 거친 껍질, 솔방울. 사람에게 이렇게 각별한 것으로 인식되는 생물종이 있어요. 침엽수처럼요. 생긴 것도 그렇고 명절에 함께하는 경우도 있고. 생태적으로 침엽수만이 잘 자라는 곳도 있잖아요. 우리가 생존하기 힘든 터전의 문턱을 장식해요. 높은 산 타고 올라가면 다른 식물, 동물을 보기 힘든 곳이 있어요. 앞에 돌만 있고 위에 하늘을 만질듯 말듯 싶은 즈음에 침엽수는 우두커니 서 있어요.

 
 

 AFRICAN MILK TREE

아니에요. 선인장 아니에요. 선인장인듯 선인장 아닌 선인장 같은 다육식물이에요. 채운각, 오채각 이름이 여러가지 있는 것 같은 이 친구는 자기만의 성격, 분위기가 있어요. 그대로 서 있지만 굽이굽이 각진 모습이라 춤추는 것만 같아요. 주로 집에서 화분에 키우지만 채운각은 아프리카 중부의 토종 식물로서 무려 3미터 높이 클 수 있답니다.

 
 

BECAUSE OF TELEVISION

처음 시작할 때 하고 싶은 일인 줄 알았는데 하다가는 그 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건지 “나 이거 왜 하고 있지?” 하면서 모르겠는 게 있죠? 그렇게 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의도한 것과 다른 듯싶고 본인의 의지에 따라 삶이 흘러가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어느덧 낯선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앞으로 가야 하니까 자신의 작은 부분을 하나하나 양보해 나가게 되고, 익숙했던 것들 다시 되찾겠지? 싶지만 결국, 한 푼의 헛된 희망밖에 남지 않아요.  


전시 이력
- Participant, ALL Abstraction Art Exhibition, Contemporary Art Gallery Online, 2021

 
 

 BIG ROCK

우리 어머니의 가족은 북대서양 한복판에서 왔어요. 섬에서 살면서 배도 돛도 만들다가 바다를 건너와서 북미 육지 끝자락에서 익숙한 밀설물 냄새가 나고 온갖 조개를 주워 먹을 수 있는 해안의 한 작은 마을에 정착을 했어요. 그 마을에서 저는 살지 않았지만, 어릴 때 여름마다 방학만 되면 사촌동생, 누나, 어머니, 할머니랑 다 같이 해변에 놀러갔죠. 우리 자리에서 좀 더 내려가면 큰 바위가 있었어요. 기어올라가면 여기저기 고인 물이 많고, 삼면에 바다로 감싸여 있는 큰 바위였어요. 가족들이 큰 담요를 깔고 누워 광합성하고 있을 때 저는 바닷물이 올라오고 고이는 그 곳에서 숨어있는 동물들 만나러 갔죠. 가족들에게는 바닷가에 놀러가는 게 햇살에 모래밭, 시원한 파도였겠지만, 저에게는 다른 세상을 탐사하는 놀이터였죠.

 
 

BOLIVIANA

색깔을 바꿔 써 보고 다른 느낌으로 그림 그려 보고 싶었지만 하다가 막히고 뭐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는데 듣고 있었던 플레이리스트에 어떤 노래가 나오는데 뭔가 갑자기 풀리는 거예요. 그래서 반복재생으로 틀어놓으니까 노래가 그림을 대신 그려주더라고요.

 

 
 

 COMFORT

참 공허하고 우울하고 외로워봐야만 아늑한 게 뭔지 아는 것 같아요. 그렇게 힘들면 작고 별 의미 없는 말 한 마디라도 그 말을 담요처럼 몸에 둘러써요.  희망, 거짓말, 추억을 둘러쓰고 꽉잡고 그 안에서 안주하는 거죠.

 
 

 DIRT

평소에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요. 바로 발 밑에, 우리 밟고 다니는 땅, 흙도 그래요. 뭔가 보잘것없고 더럽고 그렇게 생각할 필요없는 존재 같죠. 흙이라는 단어 자체도 그리 좋게 들리지가 않아요. 그런데 흙은 물 만큼 중요하고 귀한 거예요. 삶과 죽음이 만나는 곳, 생태에 생명을 불어넣어줍니다. 확대해서 보면 나무가 서로 균사체로 연결돼서 소통하고 필요한 영양분을 주고받을 수 있는 5G 같은 네트워크가 들어 있어요.

 
 

 EONS

돌, 바위, 암벽을 보면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그저 공가전적인 장소일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무궁한 시간 속의 한 순간에 서 있기도 합니다. 한결같고 튼튼하고 변함없는 암석, 무언가 생기가 없고 정태적이고 고정돼 있다고 딱딱한 고체로 보는 거죠. 하지만 그건 돌에게 자기만의 시공간의 개념,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흐르고 돌의 움직임이 다른 차원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없어서 그래요. 돌도 나름 역동적이고 깨지고 녹고 흘러요. 시간을 빨리 돌리고 보면 고체가 아니라 액체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와의 어떤 존재적 시차가 있으니까, 그 시간의 경계를 넘어 볼 수 있게 되죠. 돌을 보고 있으면 사람이 경험하지 못했던 지구의 다른 세상과 과거들이 엿보이니까요.


전시 이력
- Finalist, Landscapes Online Art Show, Grey Cube Gallery, 2021

 
 

 EPIPHYTE

우림에 들어가면 산책로를 따르지만 천천히 걸어가세요. 한 걸음 한 걸음 발 디딜곳만 내려다보지 말고 주변도 보고 위에도 올려다보세요. 큰 나무의 높은 가지에서 뿌리가 내려오고 있고 공중에 꽃이 펴 있어요. 땅에 닿지 않고 하늘에 떠 있는 꽃.

 
 

EXTINCTION

예전에 자연이나 동물 그림 그리면 뭔가 자연을 높이 삼아 뭐 올리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기록하는 것 같아요. 실록에서 빠지면 안 되니 어서 모아와서 기록하자는 느낌. 이렇게 하면서 내일의 공룡을 만들어 가는 거죠. 언젠가 아이들 재우기 전에 이야기를 들려줄 때 용이나 공룡 말할 것없이 내가 너 나이였을 때는 지구에 코끼리라는 게 있었다고. 이럴 바에야 자연이나 동물 그림 그릴 때 차라리 사실적으로 그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차피 삭제될 거 지워야죠.

 
 

 FÜR PAPI

살아 있으니까 선택이 없어요. 계속 앞으로 가야 해요. 걷는 것처럼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던져지는 몸을 다시 잡고 던지고 계속 앞으로 가야만 해요. 이렇게 살아가는 동안에 먼저 출발했던 사람, 같이 가는 사람,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중에서 응원해 주는 사람, 발목 잡으려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때가 되면 모두 다 남기고 가야만 합니다. 

전시 이력
- Participant, ALL Abstraction Art Exhibition, Contemporary Art Gallery Online, 2021

 
 

 HARP SEAL

북극을 떠올려보면 허옇게 눈부시는 평야 같은 얼음판이 생각나요. 북극곰이 바다표범을 사냥하는 모습. 그런데 그 삭막한 하얀 무대 아래에 평화롭고 아늑한 세상이 숨어 있어요. 햇살로 물든 얼음판은 크릴을 배차게 해 주고 바다표범을 보호해 주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감싸줍니다.

 
 

 HIPPOPOTAMUS

하마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는 동물입니다. 크고 무겁고 무섭고 사납고 게으른 하마는 아프리카의 생태계를 만들어주고 지켜주는 소호신이나 마찬가지예요. 낮에 더울 때 강이나 호수, 늪에서 몸 담고 쉽니다. 밤이 되면 물에서 나와서 온갖 풀을 뜯어 먹고 떨어져 있는 과일을 주워 먹어요. 그렇게 땅에서 난 식물을 먹어서 흡수한 영양분을 다시 물에 들어가게 되면 배설물로 물에 바칩니다. 땅과 물을 이어주는 ‘Cross-Boundary Species(경계선을 넘는 생물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경계선을 뚫어 생태를 연결하는 하마는 우산종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동식물에게 필요한 서식지를 만들어주고 관리를 해 주는데 만약에 하마가 없어지면 그 생태계가 무너지고 그 안에서 살고 있던 다른 생물종도 같이 없어지겠죠. 이렇게 많은 생명을 지탱해 주고 있는 하마는 무겁고 무섭고 사납고 게을러보여도 따지고 보면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대륙을 지키는 일종의 생태 건축가이니까요.

 
 

 HONEYBEE

날다가 민들레꽃에 착륙하는 게 어떤 느낌일까요? 노란 숲속에 있듯이 수백개의 꽃잎으로 둘러싸여 있고 온 세상에 노랑노랑 빛나겠죠?

 
 

 HORIZON

저 멀리 하늘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건지, 바다가 끝나고 하늘이 시작되는 건지 끝과 끝, 시작과 시작이 만나는 곳이 있대요. 거기 넘어가면 무궁한 기회와 가능성이 있대요. 모험, 발견, 명예. 하지만 사실 바라보고 있는 그 먼 곳에 그저 지구의 표면이 살짝 틀어 있는 것일 뿐이에요. 시선은 직선, 지구는 곡선, 엉뚱하게 빗나간다고 의미 부여할 게 있겠어요?

 
 

JANUARY BIRCH

자작나무와 사이가 좀 애매해요. 애증관계랄까요? 어릴 때부터 가장 좋아하면서도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게 바로 자작나무예요. 알러지가 너무 심해서 봄만 되면 놀러나가지 못했어요. 그런데 밖에서 놀 때였으면 눈이 뻘거져도 항상 자작나무부터 찾아 다녔죠. 다른 나무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으니까요. 소나무는 끈적거리는 수액이 흘러나와서 풀처럼 쓸 수 있었지만 항상 손에 묻어서 불편했고, 단풍나무는 가을이 되어야만 매력이 있고, 참나무는 도토리가 떨어져야 좋지만 자작나무는 그 어떤 계절이어도 같이 놀아줄 수 있는 친구였어요. 나무가 크면서 벗겨지는 껍질은 종이도 되고 돈도 되고 잘 접으면 장식거리도 되니까 아이가 심심할 때 갖고 놀 수 있는 것들 다 만들어줄 수 있어요. 얼마나 눈도 가렵고 괴로워도, 숲속의 모든 나무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가 바로 자작나무예요. 자작나무를 만나면 상상이 풍부해져요. 커서도 그래요. 밤에 허옇게 귀신처럼 바람에 살짝 흔들리면서 줄기에 있는 여러 눈으로 사방을 살펴보는 자작나무는 예부터 숲을 지키는 수호신과도 같아요.

 
 

 JELLYFISH

바다의 유령, 유독한 괴물, 해변에 놀러갔다가 만나면 모든 일을 망치는 존재, 가장 저급으로 분류되는 생물체. 사람들이 해파리를 싫어하는 이유가 많아요.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경험일 뿐이에요. 해파리는 흐르는대로 가고 엽기적이고 굴하지 않아요. 모양과 크기 색깔이 천차만별이고 가장 먼저 바다 전체를 구석구석 정복했어요. 해파리도 개구리나 나비처럼 변태과정을 거치고, 우리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아요. 먹히지만 않으면 노화도 없어서 영원히 바다에 떠 다니면서 살 수 있는 해파리 종류도 있어요. 그렇게 평생 생각도 고민도 없이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죠.

 
 

 MAY BIRCH

자작나무와 사이가 좀 애매해요. 애증관계랄까요? 어릴 때부터 가장 좋아하면서도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게 바로 자작나무예요. 알러지가 너무 심해서 봄만 되면 놀러나가지 못했어요. 그런데 밖에서 놀 때였으면 눈이 뻘거져도 항상 자작나무부터 찾아 다녔죠. 다른 나무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으니까요. 소나무는 끈적거리는 수액이 흘러나와서 풀처럼 쓸 수 있었지만 항상 손에 묻어서 불편했고, 단풍나무는 가을이 되어야만 매력이 있고, 참나무는 도토리가 떨어져야 좋지만 자작나무는 그 어떤 계절이어도 같이 놀아줄 수 있는 친구였어요. 나무가 크면서 껍질이 벗겨지면서 종이도 되고 돈도 되고 잘 접으면 장식거리도 되니까 아이가 심심할 때 갖고 놀 수 있는 것들 다 만들어줄 수 있어요. 얼마나 눈도 가렵고 괴로워도, 숲속의 모든 나무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가 바로 자작나무예요. 자작나무를 만나면 상상이 풍부해져요. 커서도 그래요. 밤에 허옇게 귀신처럼 바람에 살짝 흔들리면서 줄기에 있는 여러 눈으로 사방을 살펴보는 자작나무는 예부터 숲을 지키는 수호신과도 같아요.

 
 

 NAZARÉ

바다가 절벽에 부딪쳐 파도가 구름을 그리는 곳. 유럽 끝자락에서 북대서양을 맞이하는 아주 작은 마을이 있어요. 타지의 신성한 땅 이름을 빌린 채 자기만의 자랑거리라고 할 만한 것 없이 잊혀질 법했지만, 1년에 한번 크나큰 파도가 찾아오는 덕분에 스릴을 쫓는 서퍼들에게 참된 성지가 되었어요.

전시 이력
- Participant, ALL Abstraction Art Exhibition, Contemporary Art Gallery Online, 2021

 
 

 NEW GROWTH

하늘 날아가다가 운 좋게 기름진 땅에 떨어지고, 운 좋게 빗물도 햇살도 마시다가 뿌리내리기 시작하고 싹내는 확률이 몇이나 될까요? 수천, 수만 개 중 손 꼽을 정도일 텐데요. 전혀 착하지 못한 그런 확률로 태어나서 태양을 향하여 조금씩 올라오다가 새로운 시작을 펴내는 게 축복이 아니면 무엇이 축복인지 모르겠네요.

전시 이력
- Participant, ALL Abstraction Art Exhibition, Contemporary Art Gallery Online, 2021

 
 

 NO FUCKS PRICKLY PEAR (2)

선인장은 뭔가 특별한 게 있어요. 만사에 천천히, 개의치않고, 적나라하게 이 게 나야 뭐 어때? 하는 것처럼 선인장은 다른 차원의 식물이에요.

 
 

 NO FUCKS PRICKLY PEAR IN BLOOM (1)

선인장은 뭔가 특별한 게 있어요. 만사에 천천히, 개의치않고, 적나라하게 이 게 나야 뭐 어때? 하는 것처럼 선인장은 다른 차원의 식물이에요.

 
NO FUCKS PRICKLY PEAR IN BLOOM.jpg
 

NO FUCKS PRICKLY PEAR IN BLOOM (2)

선인장은 뭔가 특별한 게 있어요. 만사에 천천히, 개의치않고, 적나라하게 이 게 나야 뭐 어때? 하는 것처럼 선인장은 다른 차원의 식물이에요.

 
 

OCTOPUS

무척추동물 중에서 가장 지능이 발달된 친구는 바로 문어입니다. 우리처럼 놀이를 통해서 배우며, 인생을 단기적, 장기적 기억으로 써나가요. 그런데 문어는 우리보다 더 발달한 것도 있어요. 각 발이 개별적으로 주변환경을 인식할 수 있고, 개별적으로 반응해요. 해저를 기어가는데 모든 방향을 동시에 다르게 느끼는 게 무슨 느낌일까요? 그렇게 고차원적으로 느낄 수 있다면, 바다는 어떤 촉감, 색감 날까요?

 
 

 ORANG UTAN

나무가 높고 위아래 어디 봐도 초록 나뭇잎, 덩굴이 있어요. 우거진 숲의 지붕을 타고 다니는 오랑우탄. 오랑은 사람, 우탄은 숲. 숲사람이면 기분이 어떨까요? 하늘에 떠 있는 풍성한 정원 속에서 살겠죠. 그러다가 느닷없이 하늘이 무너지고 불이 타오르면서 총알이 날아오고 천국이 사람 손으로 지옥으로 몰락하겠죠.

 
 

PANDA

판다가 보는 숲이 어떨까요? 죽순을 찾아다니는 판다가 하도 땅만 내려다봐서 숲이 우거진 것을 모를까요? 하늘을 쳐다볼 때가 있을까요? 몸집이 큰데 숲이 작게 느껴질까요? 산기슭을 오르내리며 죽순을 찾아다니는 판다.

 
 

 QUARANTINE (1)

코로나가 싫어요. 너나 다 갇혀 놓고 점점 같이 미쳐가는 거잖아요.

 
 

QUARTER STUDY

아크릴 물감을 쓰면서 캔버스를 칠하면 색깔을 입히고 모양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기분 좋게 느껴질까 하면서 물감을 캔버스에 입히는 촉감에 더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여러 농도를 바꿔서 해 보고, 긁고 펴고 밀고 여러가지 해 봤죠. 그런데 제가 주문했던 캔버스는 작은 것 밖에 없었는데 좀 더 크게 그려보고 싶어서 4개 붙여서 해 봤더니 별로일 줄 알았던 게 너무 재미있어졌죠. 그렇게 네 조각으로 만들어져 있으니까 전체와 일부의 균형을 동시에 생각하게 되고 배치, 흐름 등을 조금씩 다르게 생각해 보고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SANSEVIERIA

우리 집에서 제가 안 죽이는, 그나마 잘 살아남는 식물이 있어요. 산세비에리아인데요. 이 그림은 산세비에리아를 그려야지 하고 시작한 건 아니고요, 하다가 그렇게 그려졌어요. 노란 젯소로 시작해서 파랑에 노랑을 좀 입혀 봤더니 마음에 안 들어서 긁고 긁다가 다 같은 톤의 연두색이 됐는데, 긁는 게 재미있게 느껴져서 다른 초록을 더해서 더 긁었어요. 그랬더니 긁은 모양이 뭔가 산세비에리아 잎의 모양과 비슷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그림은 가끔 이렇게 그리는 게 아니고,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이미 우주에 살아 있는 그림을 발견하는 것처럼 알아서 그려지는 경우가 있어요.

 
 

 SEOUL

기억과 공간. 우리가 살고 지나가고 다니는 곳은 얼마나 익숙해도 머릿속에 제대로 저장될 리가 없어요. 그런 곳들에 대한 기억은 감각을 통해서 수집되고, 경험으로 가공되며, 느낌적인 직감 같은 것으로 저장되니까요. 그렇게 기억되는 곳은 실제보다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고, 각지고, 겹치고, 자라고, 흐르고, 마음 속에 어렴풋이 새겨집니다.

 
 

SNACKFOOD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올까요? 간식이 어디서 올까요? 먹고 먹다가 그 어디가 사라질 수도 있어요. 머리에 총알 맞은 오랑우탄, 점점 작아지는 우림. 그들 자리에는 팜유, 우리 손에는 간식.

 
 

 SOCIAL DISTANCE (1)

코로나가 싫어요. 짜증나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어중간에 떠 있고 끝나지를 않아요. 인연, 우연이 빼앗기고 그 자리에 계획, 의도, 거리의 독재가 자리잡았네요.

 
 

SOCIAL DISTANCE (2)

코로나가 싫어요. 짜증나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어중건에 떠 있고 끝나지를 않아요. 인연, 우연이 빼앗기고 그 자리에 계획, 의도, 거리의 독재가 자리잡았네요.

 
 

 STUCK

저는 이 작품을 싫어하고 못 보겠어요. 잘못 그려서가 아니라 이 그림을 그렸던 기분이 너무 잘 기억나서 그래요. 정말 안 좋은 기분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그림에 전달력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저는 지금도 이 그림을 그렇게 썩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의 기분은 모두가 인생에 최소 한두 번쯤 겪는 것 같은데 예상하지 못했던 어두움에 갇혀 있고 막막한 기분.

 
 

 TOUCAN

모든 나는 새에게 자기만의 나무가 있어요. 나무가지 바꿔 타면서 놀고, 어디 한 자리에 머물 필요도 없고 뭐 떨어트리면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그냥 계속 놀면 돼요. 투칸이면 뭐에 매인 것도 없고 재미만 있겠네요.

 
 

WHALE (1)

고래에게는 어떤 게 편안하게 느껴질까요? 함께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고래가 혼자 있으면 우리에게 외로워 보이겠지만 고래들은 수천, 수만 킬로미터에 걸쳐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대요. 그렇다면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 혹은 ‘혼자’ 있는 것이 전혀 다른 의미가 있겠죠?

 
 

 WHALE (2)

우리가 고래를 만나는 곳은 수면이에요. 등, 분수공, 꼬리 정도죠. 요즘 수중 촬영이 발달돼서 여러 각도로, 가까이에서 보게 돼요. 눈, 지느러미. 하지만 고래는 우리에게 안 보이는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깊은 바다 속으로 내려갈 수 있기 위해서 몸이 진화했죠. 수면을 만나고 또 내려가고 오르고 수면을 만나고 또 내려가고 오르는 게 고래의 일상, 끊임없는 순환이고 수면에서 우리와 만날 때가 그런 생명의 시작과 끝이겠죠.

 
 

WHALE (3)

고래에게 바닷물이 어떻게 느껴질까요. 우리에게 바람이 느껴지는 것과 같을까요? 우리에게 바닷물이 하나로 보이지만, 수많은 수류가 겹치고 얽히고 흐르고 있겠죠. 우리가 바다를 보면 수면으로, 2차원으로 인식되겠지만 고래에게는 깊이와 너비, 층과 흐름이 다 섞여 있는, 복합적인 공간이겠죠. 새가 하늘에 날듯이 고래가 바다에 나는 거겠죠.


전시 이력
- Finalist, Water Art Show, Grey Cube Gallery, 2021
- Finalist, Animals Art Exhibition, Art Room Gallery, 2021

 
 

WINHALL

 고향 마을이 윈홀이라는 곳에, 깊은 산속에 있었어요. 올라가고 또 올라갔죠. 소 몇 마리도 지나가고 빨간 지붕다리도 건너가고 올라가고 또 올라가서 굽이굽이 가는 시골 흙길 따라 산이 숲으로 뒤덮여 하늘을 만나는 곳.

전시 이력
- Participant, ALL Abstraction Art Exhibition, Contemporary Art Gallery Online,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