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
우리는 인간이라서 그런지, 다른 생물종이나 주변에 있는 공간들을 봤을 때 그저 우리에게 보이는 그대로라고, 그들의 존재가 우리에게 보이는 그대로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요.
“절벽이나 바위가 보이면 돌이니까 딱딱하고 차갑고 변함이 없다. 바다에 고래 한 마리가 보이면 혼자고 외로울 것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맞는 걸까요? 우리에게 보이고 느껴지는 그대로인 게 맞을까요? 우리가 만나면 그쪽이 저한테 보이시는 그대로가 그쪽의 전부일까요?
드넓은 바다에 고래 한 마리가 보이고 혼자 있다고 해도 외롭지 않을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고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머나먼 거리에 걸쳐서 서로 말 걸고 소통할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고래란 바닷물에 몸 담고 있을 때면 혼자 있을 수도, 외로움 느낄 수도 없는 그런 동물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 돌이 있잖아요? 한결같고 튼튼하고 변함없는 암석, 무언가 생기가 없고 정태적이고 고정돼 있다고 딱딱한 고체로 보는 거죠. 하지만 그건 돌에게 자기만의 시공간의 개념,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흐르고 돌의 움직임이 다른 차원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없어서 그래요. 돌도 나름 역동적이고 깨지고 녹고 흘러요. 시간을 빨려 돌리다보면 고체가 아니라 액체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와의 어떤 존재적 시차가 있으니까, 그 시간의 경계를 넘어 볼 수 있게 되죠. 돌을 보고 있으면 사람이 경험하지 못했던 지구의 다른 세상과 과거들이 엿보이니까요.
뭐 미술, 예술이라면 창작이라 다 가능할 것 같은데 저에게 그림 그리는 것은 이렇게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나'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하는 노력을 통해서 우리는 개인보다 더 큰 존재, 자연, 우주와 가까워집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그걸 느끼고 싶으니까요. 감각과 공감을 통해서 자연과 생태계, 우리보다 큰 것과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 물감을 몸으로 움직이고 그런 철학적인 고민을 실제로 한번 만져보는 거죠.